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오와급 전함 (문단 편집) == 취역과 퇴역 == 초도함 아이오와가 1943년 2월부터 취역했으며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 후 잠시 퇴역했다가 6.25 전쟁에 다시 투입된 뒤에 완전히 퇴역했다. 하지만 미국 해병대의 강력한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에 임시로 재취역해서 BB-62 뉴저지[* 이때 수영장이 탑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. [[http://foxtrotalpha.jalopnik.com/this-us-navy-battleship-sported-two-swimming-pools-1637390515|#]][[http://www.ussnewjersey.org/thejerseyman/2008-2q.pdf|#]]]가 전쟁 중에 주포탄 5,688발, 부포탄 14,891발을 발사했다고 한다.[* 아이오와의 주포는 350발까지 포신이 견딜 수 있다. 따라서 새 주포를 장착한 상태에서 주포탄을 3150발 정도까지만 쏠 수 있다. 단 5번함 일리노이와 6번함 켄터키를 건조하려고 만들어둔 포신과 일부 예비 포신 정도는 있긴했다. 전후에 진행된 실험에 위의 포신이 사용되긴 했지만, 거기 쓰고도 남는 포가 있었을 수 있다. 전함이란게 워낙 달고다니는 포가 많다보니 중도에 취소된 두 척 분량에서 몇 개 빼다써도 한 척 포신교체할 정도는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.]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퇴역했지만 1970년대 말에 소련이 [[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|키로프급 순양함]]을 취역시키면서 미 정치권에 큰 충격을 주었다. 대소 강경책을 공약하여 집권한 [[로널드 레이건]]은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미 해군 전투함정을 600척으로 증강하겠다는 '600척 함대 구상'을 발표했고, 키로프급에 1:1로 대항 가능한 함정의 취역도 요구했다. 미 해군의 입장에서 신규 함정을 건조하는 것보다는 아이오와급의 재취역 쪽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되었으며, 베트남에서 화력지원을 톡톡히 받은 해병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80년대에 각종 근대화 개수를 받은 아이오와급이 다시 현역에 복귀했다. 이렇게 아이오와급이 취역과 퇴역을 반복한 이유는 빠른 속도와 강력한 무장 및 장갑을 갖추었기 때문에 해안[[요새]]의 [[요새포]]나 [[해안포]] 사격등의 방해를 씹어버리고 적국의 해안선을 전함의 함포로 포격해서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용도로는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. 그리고 대함 미사일을 맞더라도 강력한 장갑 덕분에 1-2발 정도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. 16인치 주포를 가진 다른 미국의 전함도 [[모스볼]] 상태로 1960년대까지 보관되어 있었으나 아이오와급보다 속도가 느려서 아이오와급 대신 사용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이유로 인해 결국 부활하지 못하고 [[스크랩]]되거나 기념함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